사무엘상 22장 배경지식: 아둘람 굴, 모압의 피난처, 놉 제사장 학살
사무엘상 22장은 다윗의 도피 공동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사울 왕권의 어두운 폭력이 놉의 제사장들에게 쏟아지는 장이다. 앞 장에서 다윗은 놉과 가드를 거쳐 생명을 건졌고, 이제 아둘람 굴로 내려간다. 이 장을 배경지식과 함께 읽으면, 다윗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단순한 무법자 집단이 아니라 왕정 사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주변부 백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놉 학살은 사울의 개인적 질투가 이스라엘의 예배 질서와 제사장 공동체까지 파괴하는 왕권의 위기로 번졌음을 보여 준다.
아둘람은 유다 저지대와 블레셋 접경을 잇는 셰펠라 지역의 성읍으로 알려져 있다. 굴과 계곡이 많은 이 지역은 산지와 평야 사이의 완충지대였고, 도피자가 숨거나 소규모 무리가 이동하기에 유리했다. 다윗이 가드에서 빠져나와 아둘람으로 간 것은 단순히 외딴 장소를 찾은 일이 아니다. 그는 사울의 중심 권력에서 벗어나면서도 유다 지파의 지리적 기반과 블레셋 국경의 현실을 동시에 의식해야 했다. 훗날 다윗 왕국의 핵심 인물들이 이 주변부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윗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그에게 내려왔다는 말은 사울의 분노가 다윗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고대 왕정에서 반역 혐의를 받은 사람의 가족은 함께 위험해질 수 있었다. 다윗의 집안은 베들레헴에 머물러도 안전하지 않았고, 그래서 도피자의 거처로 합류한다. 성경은 다윗을 고독한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사람이며,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길은 곧 가족과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현실의 길이기도 하다.
그에게 모인 사람들은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로 묘사된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압박과 정치적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빚은 토지 상실, 가족의 종살이, 생존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울의 왕정이 안정과 정의를 제공하지 못할 때, 이런 사람들은 주변부 지도자에게 몰려들 수 있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이 단순한 반란군 두목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이 무리는 훗날 훈련과 충성을 통해 왕국의 핵심 전사 집단으로 변화한다.
다윗이 모압 미스베로 가서 부모를 맡기는 장면은 룻기의 기억과도 연결된다. 다윗의 증조모 룻은 모압 여인이었고, 베들레헴의 다윗 가문은 모압과 혈연적 기억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정치적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모압은 이스라엘과 때로 긴장 관계에 있던 이웃 왕국이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피난은 고대 세계에서 낯선 일이 아니었고, 다윗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주변 왕국과의 관계까지 활용한다. 언약의 계보는 때로 이방 땅에서 피난처를 얻는 방식으로 보존된다.
갓 선지자가 다윗에게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윗은 단지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는 도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제시된다. 모압 요새는 가족에게는 안전했을 수 있지만, 다윗의 소명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하렛 수풀로 돌아간 다윗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한다. 그러나 성경은 참된 왕권이 군사 계산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적 말씀의 지시를 받아야 함을 보여 준다.
장면은 사울에게로 옮겨 간다. 사울은 기브아의 높은 곳, 에셀나무 아래에서 창을 들고 신하들을 둘러 세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무 아래 재판하거나 회의를 여는 장면은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에서 권위와 공개성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울의 손에 들린 창은 왕권의 불안과 폭력을 상징한다. 그는 베냐민 사람들에게 토지와 지위를 줄 수 있는 왕으로 자신을 제시하며, 다윗 편에 서면 얻을 이익이 없다고 압박한다. 왕권은 정의보다 후원 관계와 공포를 통해 신하들을 묶으려 한다.
사울의 말에는 피해의식이 짙다. 그는 요나단과 다윗이 자신을 해치려고 공모했다고 생각하고, 신하들이 모두 자신에게 음모를 숨겼다고 몰아붙인다. 고대 왕궁에서 정보와 충성은 생존의 핵심이었다. 왕이 의심에 사로잡히면 충성 경쟁은 폭로와 밀고로 변한다. 도엑 에돔 사람이 바로 이 틈을 이용한다. 그는 놉에서 본 일을 말하지만,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던 맥락과 다윗의 거짓 설명, 제사장의 제한된 지식은 사울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압축된다.
도엑은 에돔 출신으로 사울의 목자장이라고 소개된다. 외국계 관리가 왕실 경제나 군사 행정에서 역할을 맡는 일은 고대 사회에서 가능했다. 그는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왕의 분노에 응답하는 인물이다. 본문은 도엑을 단순한 정보 제공자로만 두지 않는다. 그는 나중에 왕의 명령을 직접 수행하여 제사장들을 죽인다. 에돔 사람이라는 표지는 이스라엘 안의 형제 공동체가 실패한 자리에 외부 출신 관리의 폭력이 들어오는 아이러니를 더한다.
아히멜렉의 변호는 매우 신중하다. 그는 다윗이 왕의 사위이며, 왕의 호위대장 격으로 존귀한 사람이고, 왕실 안에서 충성스럽게 알려진 인물이라고 말한다. 즉 그는 다윗을 반역자로 알고 도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오늘에야 비로소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었겠나이까”라는 말은 다윗이 이전에도 왕실 임무와 관련하여 성소를 찾았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히멜렉의 주장은 자신과 제사장 가문이 정치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는 데 초점이 있다.
하지만 사울은 제사장들의 설명을 듣지 않는다. 그는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 집 전체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왕의 신하들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치기를 두려워하여 거절한다. 이 거절은 사울 왕권 안에도 아직 거룩한 경계에 대한 인식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왕의 명령이라고 해서 모든 명령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려 할 때, 신하들의 침묵과 거절은 최소한의 양심적 한계로 나타난다.
도엑은 그 한계를 넘는다. 그는 세마포 에봇을 입은 제사장 팔십오 명을 죽이고, 놉 성읍의 남녀와 아이와 젖먹이와 가축까지 칼로 친다. 이는 단순 처형을 넘어 헤렘, 곧 전쟁에서 전멸시키는 심판 행위처럼 묘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불완전하게 순종했지만, 자기 의심과 분노가 향한 제사장 성읍에는 철저한 파괴를 실행한다. 본문은 잘못된 왕권이 어떻게 거룩한 전쟁의 언어와 폭력을 왜곡하는지 보여 준다.
놉 학살은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 예언과도 연결되어 읽혀 왔다. 사무엘상 초반에는 엘리의 집이 제사장직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러나 사울의 폭력이 하나님의 뜻을 정당하게 수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의 서사는 하나님의 심판 섭리와 인간의 죄책을 단순히 동일시하지 않는다. 사울은 자기 죄로 제사장들을 죽였고, 도엑은 왕의 분노에 편승해 피를 흘렸다. 동시에 독자는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던 제사장 집안과 왕권의 타락이 비극적으로 교차하는 장면을 본다.
아비아달이 살아남아 다윗에게 도망한 것은 이 장의 마지막 희망이다. 제사장 가문의 생존자가 다윗에게 합류함으로써, 다윗 공동체는 단순한 도피자 무리가 아니라 제사장적 증언과 하나님의 뜻을 묻는 통로를 품은 공동체가 된다. 훗날 아비아달은 다윗의 중요한 제사장으로 활동한다. 사울이 성소 공동체를 칼로 끊어 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남은 자를 다윗에게 붙이신다. 왕권의 정당성은 폭력으로 제사장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질서를 보존하는 데 있다.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그 날에 도엑이 거기 있음을 내가 알았으므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알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놉의 비극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다윗은 자기 생존만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친 결과를 아파한다. 이 고백은 다윗이 완전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왕으로 훈련되고 있음을 동시에 보여 준다. 좋은 왕은 자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는 다윗의 말은 사울의 말과 대조된다. 사울은 두려움을 퍼뜨려 신하들을 장악하지만, 다윗은 두려워하는 제사장 생존자에게 보호를 약속한다. 아직 다윗에게 왕궁도 군대도 안정된 성읍도 없지만, 그는 자기 생명을 찾는 자와 아비아달의 생명을 찾는 자가 같다고 말하며 함께 안전할 것이라고 한다. 도피자의 굴에서 참된 목자 왕권의 씨앗이 보인다. 사무엘상 22장은 바로 이 대조, 곧 사람을 죽여 왕좌를 지키려는 사울과 상처 입은 사람을 품으며 왕으로 준비되는 다윗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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