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장 배경지식: 빌라도 법정, 십자가, 아리마대 요셉의 장례

누가복음 23장은 예수가 유대 지도자들의 종교적 심문을 넘어 로마 총독의 법정과 십자가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전한다. 산헤드린은 예수를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다”는 정치적 고발로 넘긴다. 누가는 이 전환을 통해 예수의 죽음이 성전 지도층의 거부, 로마 제국의 법질서, 군중의 요구,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맞물린 사건임을 보여 준다. 특히 반복되는 무죄 선언과 실제 처형 사이의 긴장은 십자가가 불의한 인간 권력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임을 드러낸다.

빌라도는 로마 유대 총독으로서 반역과 치안 문제에 민감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질문은 메시아 논쟁을 로마가 이해하는 정치적 왕권 문제로 번역한 것이다. 예수의 대답은 누가복음 전체의 하나님 나라 주제와 이어진다. 그는 세속적 반란 지도자처럼 무력을 조직하지 않았지만, 참된 왕권을 가진 분이다.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누가가 강조하는 예수의 무죄성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고발자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백성을 소동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압박을 키운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은 예수를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내는 계기가 된다.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리던 분봉왕으로, 이미 세례 요한을 죽인 인물이다. 그는 예수를 오래 보고 싶어 했고 표적을 기대했지만,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기적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려는 권력 앞에서 예수는 침묵하신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계속 고발하고, 헤롯과 군병들은 예수를 업신여기며 빛난 옷을 입혀 조롱한다. 이 장면은 왕권을 조롱하는 의식처럼 보이지만, 독자는 역설적으로 참 왕이 수치 속에 서 있음을 보게 된다.

빌라도와 헤롯이 그날 서로 친구가 되었다는 언급은 정치적 타협의 분위기를 보여 준다. 서로 긴장하던 권력자들이 예수를 둘러싼 사건을 통해 일시적으로 가까워진다. 누가는 이것을 단순한 정치 일화로 넣지 않는다. 의인 예수 앞에서 서로 다른 세력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조롱과 타협으로 결탁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에게 죽일 죄가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군중의 소리에 굴복한다. 로마 법정의 형식적 판단과 실제 정의 사이의 간격이 선명해진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힌 자였다. 이름의 뜻을 둘러싼 논의는 다양하지만,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무죄한 예수가 죽고 실제 반역과 살인에 연루된 자가 풀려난다는 대속적 역전이다. 군중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노예, 반란자, 최하층 범죄자에게 사용하던 공개적 수치와 경고의 형벌이었다. 유대 사회에서도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라는 신명기적 배경 때문에 십자가는 종교적 수치까지 동반했다. 누가는 이 수치의 자리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증언한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뒤따른 장면은 제자도 언어와 깊이 연결된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는 자기를 따르려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시몬은 북아프리카 구레네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유월절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수 있다. 그가 강제로 십자가를 졌다는 사실은 로마 병사들이 식민지 주민에게 징발을 요구할 수 있었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누가는 그의 행위를 예수를 뒤따르는 장면으로 묘사하여 고난 속 제자도의 상징성을 열어 둔다.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하신 말씀도 배경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여인이 슬피 울며 따라오지만, 예수는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그들과 그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신다. 이는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 곧 누가복음 19장과 21장에서 예고된 도시의 멸망과 연결된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라는 말씀은 의로운 예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회개하지 않는 도시가 받을 심판은 더욱 두렵다는 경고로 읽힌다. 십자가 길은 단지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방문을 거부한 세대에 대한 예언적 표징이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서 예수는 두 행악자와 함께 못 박힌다. 누가는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용서의 기도를 전한다. 원문 전승 논의가 있지만, 누가복음 전체의 원수 사랑과 무지 가운데 행한 죄에 대한 사도행전의 설교와 잘 어울린다. 군인들은 옷을 나누어 제비뽑고, 지도자들은 남은 구원하였으니 자신도 구원하라고 조롱한다. 시편 22편의 의인 고난 이미지가 배경처럼 울린다. 예수는 자신을 구원하지 않음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왕이다.

십자가 위의 죄패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라고 적혔다. 로마 처형에서 죄패는 범죄 사유를 공개해 경고 효과를 주었다. 그러나 누가의 독자에게 이 문구는 조롱이면서 동시에 진실이다. 한 행악자는 예수를 조롱하지만, 다른 행악자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의 무죄를 고백한다.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한다. 예수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응답하신다. 이 짧은 대화는 누가복음의 은혜 신학을 압축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회개와 믿음으로 왕께 자신을 맡기는 자에게 구원이 선포된다.

정오쯤부터 어둠이 온 땅에 임하고 성전 휘장이 찢어진다. 어둠은 구약에서 심판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할 수 있다. 성전 휘장의 찢어짐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누가복음-사도행전의 흐름에서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성전 중심 질서가 결정적으로 재해석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새롭게 열렸다는 의미를 담는다. 예수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시편 31편의 언어로 기도하며 죽으신다. 그의 죽음은 절망적 패배가 아니라 아버지께 자신을 맡기는 의로운 종의 순종이다.

백부장은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말한다. 로마 군인의 입에서 나오는 의인 고백은 누가가 이방인 독자를 향해 펼치는 증언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구경하러 모인 무리는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지인들과 여인들은 멀리 서서 본다. 누가는 예수의 죽음 주변에 다양한 반응을 배치한다. 조롱하는 지도자와 군인, 회개하는 행악자, 고백하는 백부장, 통곡하는 무리, 지켜보는 제자 공동체가 함께 등장한다. 십자가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심판의 자리이기도 하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공회 의원이지만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된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이다. 로마 십자가 처형 후 시신 처리는 수치스럽게 방치될 수 있었지만, 요셉은 빌라도에게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여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무덤에 둔다. 이는 예수의 죽음이 실제 역사적 죽음이었고, 부활 이야기가 빈 무덤 증언과 연결됨을 준비한다. 안식일이 가까웠기 때문에 여인들은 무덤과 시신 둔 것을 보고 향품과 향유를 준비한 뒤 계명을 따라 쉰다.

누가복음 23장은 예수의 왕권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드러낸다. 빌라도와 헤롯은 책임을 회피하고, 지도자들은 조롱하며, 군중은 바라바를 요구하고, 로마는 십자가로 경고한다. 그러나 누가는 이 모든 장면 속에서 예수의 무죄, 의로움, 용서, 새 접근의 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강조한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해석 전통은 이 장을 대속, 언약, 하나님 주권, 참 왕의 자기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읽어 왔다. 누가복음 23장의 십자가는 불의한 재판의 종착지가 아니라 죄인을 대신한 왕이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구속사의 중심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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