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장 배경지식: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돌에 맞은 사도와 장로를 세운 교회들
사도행전 14장은 바울과 바나바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이 소아시아 내륙에서 어떤 환대와 박해를 동시에 만났는지를 보여 준다. 13장에서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 설교를 통해 이방 선교의 문이 넓게 열렸다면, 14장은 그 복음이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같은 도시와 마을에 들어갈 때 생기는 문화적 충돌과 교회 형성의 과정을 묘사한다. 이 장은 선교가 단순히 새로운 지역을 방문하는 일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고, 오해를 바로잡고, 고난 속에서 제자를 굳게 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일임을 보여 준다.
이고니온은 갈라디아 남부 또는 프리기아·루가오니아 경계권에 놓인 중요한 내륙 도시였다. 로마 도로망은 해안 도시와 내륙 도시를 연결했고, 상업과 군사 이동뿐 아니라 사상과 종교의 확산에도 영향을 주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간 것은 앞 장의 패턴과 이어진다. 회당은 성경 낭독과 권면이 이루어지는 장소였고,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접촉점이었다. 복음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성경과 약속의 성취로 제시된다.
누가는 두 사도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헬라인은 넓게는 그리스어 문화권에 속한 이방인을 가리킬 수 있다. 로마 제국 동부에서는 헬라어가 행정과 상업, 교육의 공용어처럼 쓰였고, 유대 디아스포라 회당도 헬라어 성경인 칠십인역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바울의 복음 선포는 이런 언어적·문화적 환경을 통해 더 넓은 청중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고니온의 반응은 곧 분열된다.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했다. 사도행전은 복음 전파가 언제나 평탄한 수용만 낳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복음은 사람을 믿음으로 부르지만, 동시에 기존의 종교적 권위와 명예 구조, 공동체 내 영향력 경쟁을 흔든다. 그래서 한 도시 안에서도 같은 말씀을 듣고 어떤 이들은 믿고, 어떤 이들은 반대하며, 사회적 압력을 동원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오래 머물며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했고, 주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게 하셨다. 누가에게 기적은 사도 개인의 능력을 과시하는 장치가 아니라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는 표지다. 말씀과 표적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특히 새 지역에서 복음이 들어갈 때, 하나님은 그 말씀이 사람의 사변이 아니라 주의 권위 아래 있음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기적이 있다고 해서 반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고니온에서 무리가 나뉘고,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는 움직임이 생기자 그들은 루가오니아의 루스드라와 더베 및 그 근방으로 피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돌로 치는 행위는 단순한 폭행을 넘어 공동체적 처벌이나 폭력적 배제의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피한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복음 사역을 지속하기 위한 지혜로운 이동이다. 사도행전의 선교는 때로 담대히 머무르고, 때로 박해를 피해 다른 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양면성을 가진다.
루스드라는 이고니온보다 더 지방적이고 루가오니아적 색채가 강한 도시였다. 누가가 뒤이어 “루가오니아 방언”을 언급하는 것은 이 지역이 헬라어·라틴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토착 언어와 문화의 세계였음을 보여 준다. 바울 일행은 회당 중심의 디아스포라 유대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더 직접적으로 이방 민간 종교와 마주한다. 이 점에서 루스드라 사건은 사도행전 17장의 아덴 설교와 함께 이방 세계 선교의 문화적 조정 문제를 잘 보여 준다.
루스드라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울의 말을 듣고 있었고,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큰 소리로 일어나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못 걷는 사람을 일으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는 베드로와 바울의 사역을 평행적으로 배치하며, 같은 주께서 예루살렘과 이방 지역에서 동일하게 역사하심을 보여 준다.
사람들이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외친 것은 고대 이방 종교 세계의 배경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신들이 인간 모습으로 땅을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소아시아 지역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 방문 전승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부른 것은 바울이 주로 말하는 사람, 곧 전령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들은 복음의 표적을 자신들의 신화적 세계관 안에서 오해했다.
성 밖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 한 장면은 당시 도시 종교가 공적 생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신에게 제사하는 일은 개인의 내면 신앙만이 아니라 도시의 안전, 번영, 명예와 관련된 공적 의례였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놀라운 치유를 도시의 신적 방문으로 해석하고, 적절한 제의적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복음의 사도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들이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다.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외친 것은 유대적 배경에서 신성모독과 우상숭배에 대한 슬픔과 항의의 몸짓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높이려는 열광을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사역자가 존경을 받을 때 가장 큰 시험은 그 존경을 복음이 아니라 자신에게 묶는 일이다. 사도들은 그 유혹을 단호히 거절한다.
루스드라 연설에서 바울은 회당 설교처럼 이스라엘 역사와 다윗 언약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청중이 성경을 공유하지 않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선교적 지혜가 드러난다. 복음의 내용은 변하지 않지만, 출발점은 청중의 배경에 맞게 조정된다.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과 일반 은총의 표지에서 시작한다.
바울은 지나간 세대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이 자기 길로 가게 두셨으나, 자기를 증언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고 결실기를 주시며 음식과 기쁨으로 마음을 만족하게 하셨다는 표현은 농경 사회 청중에게 직접 와 닿는 언어다. 루가오니아 지역 사람들에게 비와 수확, 계절의 안정은 생존과 번영의 핵심이었다. 바울은 그들이 신들에게 돌리던 선물을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로 다시 해석한다.
이 짧은 연설은 로마서 1장과도 연결된다. 피조 세계와 하나님의 선한 공급은 하나님을 알 만한 표지를 제공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우상으로 바꾸기 쉽다. 바울은 이방 종교를 단지 무지한 풍습으로만 보지 않고, 참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헛된 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조롱이나 멸시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 이미 남기신 선한 흔적을 붙들고 회개를 촉구한다. 이는 복음 선포가 진리와 긍휼을 함께 가져야 함을 보여 준다.
무리를 겨우 말려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했지만, 곧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한다. 앞에서는 사도들을 신으로 높이려던 사람들이 이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린다. 군중의 열광과 폭력은 놀랄 만큼 빠르게 뒤바뀐다. 사도행전은 인간의 환호를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여 준다. 복음 사역자는 사람들의 칭송에도 취하지 말고, 배척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이 돌에 맞아 성 밖에 버려진 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 일어나 다시 성에 들어간 장면은 강렬하다. 본문은 이를 기적적 회복으로 읽을 여지를 남기지만, 핵심은 복음 사역의 고난과 담대함이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이 여러 번 매 맞고 돌에 맞았다고 회고한다. 루스드라 사건은 그가 복음을 위해 실제 몸의 위험을 감당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 장면이다. 사도의 권위는 세상의 안전과 명예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충성으로 드러난다.
다음 날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는다. 더베는 첫 선교 여행의 동쪽 끝 지점처럼 보이며, 본문은 그곳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열매가 있었음을 짧게 언급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가까운 다른 길로 돌아가기보다, 방금 박해를 경험했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선택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교회들을 돌보기 위한 목회적 결정이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패배주의가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영광에 들어가셨듯, 교회도 현 시대의 반대와 고난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든다. 개혁파와 복음주의 전통은 이 구절을 교회의 순례적 현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본문으로 읽어 왔다. 하나님 나라의 승리는 고난을 우회하지 않고, 고난 가운데 믿음을 보존하시는 은혜로 나타난다.
바울과 바나바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위탁한 장면은 초기 교회의 질서 형성을 보여 준다. 장로는 유대 회당과 구약 백성의 지도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명칭이지만,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지역 교회 안에서 말씀과 돌봄의 책임을 맡는 지도자들로 나타난다. 선교는 회심자를 남겨 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말씀을 따라 지속적으로 돌봄을 받고, 공동체적으로 세워질 교회가 필요하다.
그들이 장로를 세우며 금식하고 기도했다는 말은 13장의 안디옥 파송 장면과 연결된다. 선교의 시작도 예배와 금식과 기도였고, 새 교회의 정착도 금식과 기도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을 세우는 일은 조직 운영의 기술만이 아니라 주께 맡기는 영적 행위다. “그들이 믿는 주께 위탁했다”는 표현은 사도들이 모든 지역에 계속 머물 수 없었지만, 교회의 참 목자이신 주께서 그들을 붙드신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밤빌리아, 버가, 앗달리아를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간다. 앗달리아는 밤빌리아 해안의 항구로, 지중해 항해를 통해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통로가 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은 여정의 도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 복음 전파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실제 도로와 항구, 산지와 도시를 지나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 나라의 소식은 역사와 지리 속에서 몸을 가진 사람들의 발걸음을 통해 전해졌다.
안디옥 교회에 돌아온 두 사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한다. “믿음의 문”이라는 표현은 14장의 핵심을 잘 요약한다. 회당을 통해, 이방 도시의 오해와 반대 속에서, 돌에 맞는 고난과 교회 설립을 통해 하나님은 열방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문을 여신다. 이 문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열린다.
사도행전 14장의 배경을 알면 초대 교회 선교가 얼마나 복합적인 현실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보게 된다. 유대 회당의 성경적 논증, 헬라·로마 도시의 공적 종교, 루가오니아 토착 언어와 신화, 로마 도로와 항구, 군중 심리와 폭력, 장로를 세우는 교회 질서가 한 장 안에 함께 등장한다. 복음은 이 모든 세계를 지나가며 사람들을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돌이킨다.
오늘의 독자에게 이 장은 선교와 교회 생활을 낭만화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복음을 전하면 믿는 이들이 생기지만, 오해와 반대도 일어난다. 때로 사람들은 사역자를 지나치게 높이고, 때로 같은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주께서는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고, 환난 가운데 제자를 굳게 하시며, 교회에 지도자를 세우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칭찬과 박해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과 기도와 질서 있는 돌봄으로 사명을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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