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배경지식: 제국의 수도 로마와 복음, 의인과 우상숭배의 세계
로마서 1장은 바울이 아직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문을 연다. 로마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지중해 세계의 정치·군사·상업·상징 권력이 집중된 제국의 수도였다. 바울은 그 중심을 향해 자기 사도직과 복음의 성격을 설명한다. 이 장을 배경지식으로 읽으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선언이 개인 경건의 문구를 넘어 제국의 질서와 우상숭배의 세계 한복판에서 선포된 왕적 소식임을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라고 소개한다. 고대 편지의 첫머리는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인사로 시작하는 관습을 따랐지만, 바울은 그 짧은 형식을 신학적 고백으로 확장한다. “종”은 굴욕의 단어처럼 보일 수 있으나 구약의 모세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렸던 배경을 함께 지닌다. 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로마 시민권이나 학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명에서 찾는다.
로마서의 수신자들은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공동체가 아니었다. 오순절 순례자, 유대 디아스포라, 상인과 여행자, 노예와 해방노예, 군인과 행정망을 통해 복음이 이미 로마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로마서 16장의 이름들을 보면 이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 남성과 여성, 집 교회 네트워크가 섞인 다층적 모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되었다가 네로 시기 이후 일부가 돌아온 역사도 로마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사도행전 18장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클라우디우스의 명령 때문에 로마를 떠났다고 말한다. 유대 신자들이 떠난 동안 이방 신자 중심의 교회가 형성되었고, 이후 유대 신자들이 돌아오면서 율법, 음식, 절기, 아브라함 언약,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문제가 민감해졌을 수 있다. 로마서 1장은 이런 긴 논의의 시작점에서 복음의 보편성과 하나님의 의를 제시한다.
바울은 복음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복음이 로마 세계의 새로운 철학 유행이나 바울 개인의 종교 체험이 아니라 이스라엘 성경의 약속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예수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 있게 선포되셨다. 다윗 왕권과 부활은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와 맞서는 참 왕권의 토대를 이룬다.
“하나님의 아들”, “주”, “복음” 같은 표현은 로마 세계에서도 정치적 울림을 가질 수 있었다. 황제의 탄생과 즉위, 승전 소식이 좋은 소식으로 선전되었고, 황제는 평화와 질서의 수호자로 칭송받았다. 바울은 로마를 향해 예수가 참 주이시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은 단순한 반제국 정치 구호가 아니라 죄와 진노, 의와 믿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다루는 훨씬 깊은 구속사적 선포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위해 감사하며 그들을 방문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한다. 그는 영적 은사를 나누어 굳게 하고, 동시에 서로의 믿음으로 위로를 얻고자 한다. 사도인 바울도 로마 신자들에게 일방적으로만 베푸는 위치에 있지 않다. 고대 후원 문화와 명예 경쟁이 강했던 세계에서 바울은 복음 안의 상호 격려를 말한다. 교회는 제국식 위계와 과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와 믿음으로 서로를 세우는 공동체다.
로마서 1장 16-17절은 편지 전체의 주제문으로 여겨진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유대인 메시아를 제국의 수도에 선포하는 일은 당시 기준으로 어리석고 수치스럽게 보였을 수 있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반역자와 노예에게 가한 공개적 수치의 형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그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는 표현은 복음의 역사적 순서와 보편적 범위를 함께 담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약속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셨고, 그 약속은 열방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열방을 품도록 의도되었다. 로마서 1장의 복음은 유대적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이방 세계 전체로 확장된다. 이 균형을 잃으면 로마서의 논증은 쉽게 반유대주의나 반대로 민족적 특권주의로 오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의”는 로마서 해석의 핵심이다. 종교개혁 전통은 이 표현을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과 법정적 선언으로 깊이 읽어 왔다. 동시에 최근 연구들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과 구원 행위의 측면도 주목한다. 로마서 1장에서는 이 둘을 분리하기보다, 하나님이 자기 약속에 신실하게 행동하셔서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구원하시는 현실로 이해할 수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 인용은 심판의 시대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이 생명을 얻는다는 구약의 흐름을 복음 안에서 새롭게 드러낸다.
18절부터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해 나타난다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특정 민족만 정죄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이방 세계의 우상숭배와 도덕적 붕괴를 분석하지만, 곧 2장에서 유대인 독자도 같은 심판 아래 있음을 드러낸다. 로마서의 논증은 “저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의롭다 할 수 없음을 밝히는 길이다.
창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알려졌다는 말은 고대 유대 지혜 전통과도 통한다. 하늘과 땅, 생명과 질서는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인간은 그 지식을 감사와 예배로 연결하지 않고 우상으로 왜곡했다. 로마 세계의 신전, 제단, 가정 수호신, 도시의 보호신, 황제 숭배는 종교와 정치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이런 세계를 단순히 무지한 문화로 보지 않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한 질서 전복으로 진단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셨다”는 반복은 로마서 1장의 무거운 표현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번개처럼 외부에서만 떨어지는 형벌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욕망과 우상숭배의 길을 그대로 방치하시는 심판으로도 나타난다. 창조주를 거절하면 인간의 생각과 욕망, 관계와 몸의 사용도 뒤틀린다. 바울은 성 윤리 문제를 고립된 주제로 다루기보다, 예배의 왜곡이 인간 전 존재의 왜곡으로 번지는 흐름 속에서 말한다.
마지막 악덕 목록은 로마 사회의 타락상을 향한 풍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독자를 심판대 앞에 세운다. 불의,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의, 수군거림, 교만, 부모 거역은 특정 집단만의 죄가 아니다. 바울은 제국의 웅장한 질서 뒤에 감추어진 인간 마음의 무질서를 폭로한다. 로마의 법과 군대가 평화를 말해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 사회는 참된 의와 생명을 만들 수 없다.
로마서 1장의 배경을 알면 복음의 필요성이 더 선명해진다. 로마는 길과 항구, 법과 행정, 군사력과 문화적 자부심을 가진 도시였지만, 바울이 보기에 그곳도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 죄인의 세계였다. 동시에 복음은 그런 로마를 피해 도망가지 않는다. 바울은 제국의 중심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의 능력을 나누며, 서바나 선교까지 바라본다. 복음은 주변부의 위로이면서 중심부를 향한 하나님의 도전이다.
오늘의 독자는 로마서 1장에서 두 가지를 함께 들어야 한다. 첫째,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권력과 지식, 문화가 복음을 낡고 수치스럽게 보이게 해도, 십자가와 부활 안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둘째, 우리는 우상숭배의 문제를 남의 종교로만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사랑하고, 감사 대신 자기 영광을 붙드는 모든 마음이 로마서 1장의 진단 아래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 1장은 정죄로 끝나는 장이 아니라 복음의 문을 여는 장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드러나는 이유는 인간의 절망을 폭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왜 복음 안에서 계시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제국의 수도 로마와 오늘의 도시, 고대의 신전과 현대의 우상,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복음이다. 의인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며,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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