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배경지식: 강한 자의 섬김, 이방인의 소망, 바울의 서바나 선교 계획
로마서 15장은 앞장의 음식과 날 논쟁을 이어받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바울의 세계 선교 비전을 함께 보여 준다. 이 장은 공동체 윤리와 선교 계획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바울에게 교회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은 단순한 내부 예절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소망 안에 모으신 복음의 실제 표현이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은 로마서 14장의 결론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강함은 자기 자유를 마음껏 행사할 권리가 아니라, 형제의 연약함을 짊어질 책임이다.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강한 사람이 명예와 지위를 통해 자기 유익을 확보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바울은 교회의 강함을 그리스도의 자기 낮춤으로 재정의한다.
바울은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기쁘게 한다는 말은 사람의 눈치를 보며 복음을 타협하라는 뜻이 아니다. 형제가 주 앞에 설 수 있도록 공동체를 세우는 방향으로 자기 자유를 조정하라는 의미다. 로마의 집 교회들은 다양한 민족과 신분, 관습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런 덕 세움은 매우 실제적인 목회 과제였다.
바울은 그 근거를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는 말은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를 공동체 윤리의 중심에 둔다. 바울은 시편 69편의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를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욕을 감당하셨다고 읽는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신자가 형제를 위해 자기 편의를 내려놓는 것은 복음의 주변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길이다.
로마서 15장은 성경 해석의 목적도 말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는 문장은 구약 성경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인내와 위로를 위해 주어졌음을 보여 준다. 초대교회는 히브리 성경을 단순한 과거 기록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 메시아의 길,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구원 계획을 읽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로마 교회가 겪는 긴장과도 맞닿아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일은 신학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약속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갈등과 오해를 낳았다. 바울은 그들이 같은 생각을 품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한다. 예배의 일치는 단순한 감정적 화합이 아니라 복음이 만든 새 백성의 표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는 구절은 로마서 14–15장의 핵심 결론이다. 서로 받는 기준은 상대의 문화적 익숙함이나 식탁 규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받으신 은혜다. 로마 교회 안에서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적 증언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언약 백성 안에서 태어나 율법 아래 사셨고,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확증하셨다는 뜻이다. 복음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폐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셨고, 그 성취가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
동시에 바울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는 대체나 경쟁이 아니라 약속과 긍휼의 질서 속에서 이해된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해 약속의 성취를 보고, 이방인은 받을 자격 없는 긍휼로 들어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둘이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로마서 15장의 비전이다.
바울은 이 비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약 여러 본문을 연속으로 인용한다. 시편 18편, 신명기 32장, 시편 117편, 이사야 11장이 이어지며 이방인들이 주를 찬양하고, 이새의 뿌리에게 소망을 두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러한 인용들은 이방인의 구원이 바울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성경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임을 보여 준다.
특히 이사야 11장의 “이새의 뿌리”는 다윗 왕조의 메시아적 소망을 떠올리게 한다. 로마 제국의 중심 도시에 사는 신자들에게 참 소망은 황제의 평화가 아니라 다윗의 뿌리에서 나온 메시아의 통치에 있었다. 이 메시아는 이스라엘만의 왕으로 갇히지 않고 열방이 바라보는 소망이 된다. 바울은 이 약속을 로마 교회가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장 중반부터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사명을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맡았다고 말한다. 제사장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도록 복음을 전한다고 본다. 선교는 단순한 종교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의 완성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다고 말한다. 일루리곤은 아드리아 해 동쪽의 로마 행정권역을 가리키며, 바울의 선교 활동이 동지중해 세계의 주요 길을 따라 넓게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려는 개척 선교 비전을 밝힌다.
이 원칙은 이사야 52장의 “그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라는 말씀과 연결된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전략을 성경의 종말론적 약속 안에서 이해했다. 복음이 열방으로 나아가는 것은 개인적 야망이나 여행 계획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과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알려지는 성경적 흐름의 일부다.
로마 방문 계획도 이런 선교 지형 속에서 나온다.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려 했으나 막혔다고 말하고, 이제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를 방문하기 원한다고 밝힌다. 서바나는 로마 제국 서쪽 끝으로 여겨지던 히스파니아를 가리킨다. 바울에게 로마 교회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서방 선교를 위한 동역의 거점이었다.
고대 여행은 오늘날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해상 항로, 계절풍, 항구 도시, 후원과 숙박, 추천서와 동역 네트워크가 모두 필요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게 “그리로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너희가 그리로 보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는 로마 교회가 서바나 선교를 위해 기도와 물질, 관계망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쁘게 연보했기 때문이다. 이 연보는 단순한 구제금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의 하나 됨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을 섬기는 일은 복음 안에서 빚진 관계와 감사의 표현이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영적 것을 나누어 가졌으므로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영적 것과 육적 것은 복음의 약속과 물질적 지원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상호 의존의 틀로 놓는다. 이방인 교회는 이스라엘의 약속에서 나온 복음의 은혜를 받았고, 이제 실제 사랑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을 섬긴다.
예루살렘 방문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긴 법정 여정을 거쳐 결국 로마에 가게 되는 흐름을 보여 준다.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이 유대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건짐받고, 예루살렘을 위한 섬김이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현실적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기도 요청은 선교가 인간적 계획만으로 진행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는 서바나로 가려는 큰 비전을 품었지만, 예루살렘의 긴장과 로마 방문의 불확실성 앞에서 교회의 기도를 요청한다. 복음 사역은 전략과 길, 후원과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성도들의 중보에 의존한다.
로마서 15장의 배경을 알면, 이 장이 공동체 안의 배려에서 세계 선교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는 식탁의 사랑,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적 선교, 예루살렘 연보와 서바나 비전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신 복음에서 흘러나온다.
오늘의 교회도 로마서 15장을 통해 자기 자유와 선교 비전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열방 선교를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세계적 계획을 잊은 채 내부 평안만 추구할 수도 없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게 묻는다. 너희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형제를 받아들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소망 안에 모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직 듣지 못한 곳을 향한 복음의 길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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