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1장 배경지식: 그레데 장로 임명과 바른 교훈의 질서
디도서 1장은 바울이 그레데에 남겨 둔 동역자 디도에게 교회의 질서를 세우라고 맡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디모데전후서가 에베소의 거짓 교훈과 목회적 인내를 다룬다면, 디도서는 그레데라는 섬 지역에서 복음 공동체가 어떻게 공적 신뢰와 바른 교훈을 함께 세워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바울은 디도에게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라고 명하고, 감독의 자격을 가정과 성품, 가르침의 충성도에서 찾는다. 이어서 거짓 교사들을 엄히 책망하라고 말하며, 그레데인의 평판과 유대적 신화, 정결 논쟁이 교회 생활을 흔드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 장은 초대 교회의 직분, 섬 선교, 헬라-로마 명예 문화, 유대 배경의 거짓 교훈, 그리고 복음이 삶의 질서로 나타나야 한다는 목회적 주제를 함께 담고 있다.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부른다. 종이라는 표현은 모세와 선지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약적 봉사의 언어이고, 사도라는 표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보냄 받은 권위를 가리킨다. 바울의 사도직 목적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이다. 목회서신에서 진리는 추상적 지식에 머물지 않고 경건으로 이어진다. 그레데 교회의 문제도 단지 정보 부족이 아니라, 복음 진리와 삶의 질서가 분리되는 문제였다.
2절과 3절은 바울의 사역이 영생의 소망 위에 세워졌음을 말한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은 거짓말로 악명 높은 그레데인의 평판과 의도적으로 대비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약속하셨고, 때가 되어 전도로 자기 말씀을 나타내셨다. 초대 교회는 복음 선포를 인간의 종교적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드러난 사건으로 이해했다. 바울이 디도에게 맡긴 교회 질서도 행정 기술이 아니라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드러내는 사역이다.
4절에서 디도는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로 불린다. 디도는 헬라인 신자로서 갈라디아서 2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할례를 강요받지 않음으로써 이방인 복음의 자유를 보여 준 인물이었다. 그런 디도가 그레데 교회에서 지도자를 세우고 거짓 교훈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 문제를 실제로 겪은 사역자였고, 복음의 자유와 교회의 질서를 함께 지켜야 하는 자리로 보냄 받았다.
5절의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디도서 전체의 실천적 배경을 알려 준다. 바울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을 바로잡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했다. 그레데는 지중해 동부와 서부를 잇는 중요한 섬이었고, 여러 도시와 항구가 흩어져 있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에 그레데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사도행전 27장에는 바울의 항해가 그레데의 미항과 뵈닉스 주변을 지난다. 섬 곳곳의 작은 공동체에는 복음을 따라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돌볼 지역 지도자가 필요했다.
장로 임명은 초대 교회가 무질서한 열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카리스마 있는 개인이나 순회 교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지역 교회 안에 검증된 장로들을 세우게 했다. “각 성에”라는 말은 그레데의 여러 도시 교회가 한 사람의 원격 지휘가 아니라 지역적 책임 구조를 가져야 했음을 시사한다. 개혁주의 전통은 이런 본문에서 말씀과 교리, 삶의 본을 통해 교회를 돌보는 장로 직분의 중요성을 보아 왔다.
6절의 첫 기준은 가정과 평판이다.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믿는 자녀가 있어 방탕하다 하는 비난이나 불순종의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이 표현은 모든 자녀가 반드시 완전한 신앙 고백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만 좁힐 수는 없지만, 지도자의 가정이 공적으로 방탕과 무질서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헬라-로마 사회에서 가정 관리는 한 남자의 공적 신뢰와 연결되었다. 바울은 그 문화의 언어를 활용하면서도, 복음 공동체의 지도자는 권위보다 절제와 신실함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7절에서 장로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감독으로 설명된다. 장로와 감독은 여기서 서로 긴밀히 겹치는 직분 언어로 사용된다. 감독은 자기 소유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 집을 맡은 관리자다. 그래서 제 고집대로 하지 않고, 급히 분내지 않으며,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그레데의 도시 문화와 후원 관계 속에서 지도자는 명예, 술자리, 재정적 이익, 강압적 권위의 유혹을 받을 수 있었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세상적 남성성이나 지배력에서 찾지 않는다.
8절과 9절은 긍정적 자격을 제시한다. 장로는 나그네를 대접하고, 선을 사랑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절제해야 한다. 지중해 세계에서 나그네 환대는 여행하는 선교자와 가난한 성도, 낯선 형제자매를 보호하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환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굳게 지켜야 한다. 그래야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다. 목회자의 성품과 교리적 충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10절부터 11절은 그레데 교회의 위기를 설명한다.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들이 많은데, 특히 할례파 가운데 그런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않은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렸다. 목회서신의 거짓 교훈은 유대적 신화, 족보, 율법 논쟁, 금욕적 규칙, 재정적 이익과 연결된다. 그레데의 가정 교회 구조에서는 한 집안이 흔들리면 모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는 폭력적 침묵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하는 가르침에 공적 권징과 바른 교훈으로 대응하라는 뜻이다.
12절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는 인용은 고대 그레데 출신 시인 에피메니데스와 관련된 말로 알려져 있다. 바울은 지역 전체를 인종적으로 멸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레데 사회에 널리 알려진 평판을 사용하여 교회가 복음에 어울리지 않는 문화적 습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거짓과 탐욕과 방종으로 악명 높은 지역 문화에 동화된다면 복음의 공적 증언이 훼손된다.
13절의 “이 증언이 참되도다”는 바울의 현실 인식을 보여 준다. 그는 모든 문화를 낭만적으로 보지 않고, 특정 지역의 죄와 습관을 분별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멸시가 아니라 회복이다.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자 함이라.” 책망의 목표는 수치 주기나 배제가 아니라 건강한 믿음이다. 바른 교훈은 사람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거짓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복음의 온전함으로 돌이키는 치료적 말씀이다.
14절은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 여기에는 구약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벗어난 추측적 신화와 인간 명령이 문제다. 목회서신은 율법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면 선하다고 말하지만, 족보와 신화와 논쟁으로 복음의 중심을 흐리는 사용을 거부한다. 그레데 교회는 이방 지역에 있었지만, 거짓 교훈은 유대적 요소와 헬라-로마적 이익 추구가 섞인 형태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15절의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는 정결과 양심의 문제를 다룬다. 유대적 정결 규정이나 금욕적 명령을 복음의 본질로 만들면, 외적 규칙은 많아져도 마음과 양심은 더러울 수 있다. 바울은 창조 세계를 선하게 보면서도, 불신앙과 부패한 양심이 모든 것을 왜곡한다고 말한다. 참된 정결은 음식과 물건에 대한 인간 명령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믿음과 양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디도서의 윤리는 금욕주의가 아니라 복음에서 흘러나오는 선한 삶이다.
16절은 거짓 교사들의 가장 심각한 모순을 드러낸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한다. 말로는 경건과 지식을 주장하지만, 삶은 가증하고 복종하지 않으며 모든 선한 일을 버린 자의 모습이다. 디도서 전체에서 “선한 일”은 반복되는 핵심어다. 바울은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면, 그 은혜는 불경건과 세상 정욕을 버리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을 만든다. 그러므로 말과 삶이 분리된 종교성은 복음의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디도서 1장의 배경지식은 오늘 교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교회는 지역 문화의 장점과 언어를 이해해야 하지만, 거짓과 탐욕과 방종을 복음의 이름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를 세울 때 능력과 인기, 말솜씨만 보아서는 안 되고, 가정과 성품과 돈에 대한 태도, 분노와 절제, 바른 교훈을 붙드는지를 살펴야 한다. 또한 바른 교훈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고 거짓된 삶을 치료하며 선한 일을 낳는 진리여야 한다.
결국 디도서 1장은 그레데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복음이 어떻게 공적 질서와 거룩한 삶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 준다. 여러 도시의 교회, 섬의 항구 문화, 고대의 지역 평판, 유대적 거짓 교훈과 정결 논쟁, 가정 교회의 취약성, 장로와 감독의 책임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를 떠나라고 말하지 않고, 그곳에 남아 부족한 일을 바로잡으라고 한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음은 혼란한 문화 한가운데서도 교회를 세우고, 바른 교훈으로 삶을 질서 있게 하며, 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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