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장 배경지식: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대제사장과 멜기세덱의 질서

히브리서 5장은 앞 장에서 선포한 “큰 대제사장” 예수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풀어 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먼저 구약의 대제사장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한 뒤, 그 기준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더 깊고 완전하게 성취되는지 보여 준다. 이 장을 배경지식으로 읽으면, 아론 계열 제사장의 소명과 제사 기능, 속죄일 전통, 시편 2편과 시편 110편의 왕적·제사장적 메시아 신학, 멜기세덱 전승, 그리고 고난 속에서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목회적 위로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마지막에는 독자들의 영적 둔함을 책망하며, 깊은 교리를 받을 만큼 성숙해야 한다는 권면도 이어진다.

1절은 대제사장이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라고 말한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하는 직분이므로, 하늘에서 멀리 떨어진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백성 가운데서 세워진 사람이어야 했다. 그는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예물과 속죄 제사를 드렸다. 성막과 성전의 제사 제도에서 대제사장은 특히 속죄일에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표자였다. 히브리서는 이 배경을 통해 예수의 제사장 사역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대표하고 구원하는 실제 사역임을 설명한다.

2절은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무식함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을 넘어, 하나님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헤매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킨다. 구약의 제사장은 자신도 연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백성의 연약함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공감은 동시에 한계를 가진다. 그는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 죄를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 했다.

3절은 바로 이 한계를 말한다. 아론 계열 제사장은 백성의 죄뿐 아니라 자기 죄를 위해서도 제사를 드렸다. 레위기 전통에서 제사장은 거룩한 직분을 맡았지만 죄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구약 제사 제도는 중보의 필요성을 보여 주면서도, 완전한 중보자가 아직 필요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드러냈다. 히브리서는 이 불완전성을 배경으로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더 선명하게 제시한다.

4절은 누구도 스스로 이 존귀를 취하지 못하고 아론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사장 직분은 개인의 야망이나 사회적 명예 경쟁으로 얻는 자리가 아니었다. 민수기와 역대기 전승은 제사장 직분을 함부로 침범한 사건들이 심각한 심판을 불러왔음을 보여 준다. 고대 세계에서 종교적 권위는 정치적 권력과 쉽게 결합될 수 있었지만, 성경은 참된 제사장직이 하나님의 소명에 근거한다고 강조한다.

5절과 6절은 예수도 스스로 영광을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세움을 받으셨다고 말한다. 저자는 시편 2편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와 시편 110편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말씀을 함께 인용한다. 시편 2편은 왕의 즉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왕적 신분을 말하고, 시편 110편은 다윗의 주가 왕이면서 동시에 독특한 제사장임을 말한다. 히브리서는 이 두 시편을 결합하여 예수가 왕적 아들이며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잠깐 등장하지만 히브리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는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그는 레위 지파나 아론 계열에 속하지 않지만 제사장으로 나타난다. 시편 110편은 이 멜기세덱의 질서를 왕적 메시아의 영원한 제사장직과 연결한다. 히브리서 5장은 이 주제를 소개하고, 7장에서는 더 길게 설명한다.

7절은 예수의 지상 생애를 매우 깊은 언어로 묘사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받았다. 이 구절은 겟세마네의 기도를 떠올리게 하지만, 예수의 전 생애에 흐른 고난과 순종의 기도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죽음을 가볍게 지나간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실제 인간으로서 죽음의 두려움과 고난의 무게를 경험하셨다.

“들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를 피했다는 뜻이 아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잔이 지나가기를 구하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고,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부활로 건져 내셨다. 히브리서의 관점에서 들으심은 고난을 제거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해 완전한 구원 사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포함한다. 이것은 고난 중인 독자에게 큰 위로를 준다.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즉시 없애지 않으시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구원의 길 안에 붙들어 두신다.

8절은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예수가 이전에 불순종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본질상 완전하시지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실제 인간의 자리에서 순종의 길을 경험적으로 걸으셨다. 그는 시험과 고난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따르심으로, 자기 백성을 대표하는 참 인간의 순종을 이루셨다. 개혁주의 전통은 이를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과 연결하여 이해해 왔다.

9절은 예수가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온전하게 됨은 도덕적 결함이 고쳐졌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자의 직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고난과 순종의 길을 완주하셨다는 뜻이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구약 제사장은 반복되는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자기 순종과 희생으로 영원한 구원을 이루신다.

10절은 하나님이 그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셨다고 다시 확인한다. 히브리서 독자에게 이 말은 낯설고 깊은 주제였을 것이다. 아론 계열 제사장과 성전 제도에 익숙한 유대적 배경의 독자라면, 레위 계통 밖의 제사장직이 어떻게 정당한지 질문할 수 있다. 저자는 시편 110편의 권위를 통해 메시아의 제사장직이 레위 제도보다 더 오래되고 더 높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말한다.

11절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저자는 멜기세덱에 관해 할 말이 많지만, 독자들이 듣는 것이 둔해졌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히브리서의 책망은 지적 능력이 낮다는 조롱이 아니다. 문제는 영적 수용성이다. 고난과 압박 속에서 독자들은 복음의 깊은 의미를 붙들기보다 익숙한 안전지대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수 있다. 듣는 귀가 둔해지면, 그리스도의 영광도 작게 보이고 경고도 무디게 들린다.

12절은 시간이 지나면 마땅히 선생이 되었어야 하지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배워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초대 교회에서 성숙한 신자는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삶과 공동체 안에서 분별하며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오래 믿었지만 성숙의 열매가 부족했다. 그래서 저자는 그들이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한다.

13절과 14절은 젖과 단단한 음식의 비유를 사용한다. 젖을 먹는 자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아이이고,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다.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도록 연단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선악 분별은 일반 도덕 판단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거짓 안전을 구별하는 영적 분별을 포함한다. 히브리서 전체의 문맥에서 성숙은 예수의 제사장직, 새 언약, 고난 속 인내를 깊이 이해하고 붙드는 능력과 관련된다.

히브리서 5장의 배경지식은 예수의 대제사장직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 준다. 그는 사람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대표하신 참 인간이시며, 하나님께 직접 세움을 받은 아들이시다. 그는 아론 계열 제사장처럼 연약함을 아시지만, 그들과 달리 죄가 없으시다. 그는 멜기세덱의 질서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으로 세워졌고, 고난 속에서 순종의 길을 완주하여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동시에 이 장은 깊은 교리를 피하려는 신앙의 게으름을 책망한다. 대제사장 예수의 영광은 얕은 위로만으로 붙들 수 없는 깊은 복음이다. 고난 중인 성도는 단순한 감정적 안정이 아니라, 왜 예수가 참 중보자이며 왜 그의 순종과 제사장직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지를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5장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는 초대 뒤에, 그 은혜의 근거를 더 깊이 배우고 장성한 믿음으로 자라라는 부름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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