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배경지식: 결혼과 어린아이, 부자 청년과 하나님 나라의 역전

마태복음 19장은 갈릴리 사역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길로 이동하는 전환부에 놓인다. 예수께서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셨다는 말은 이제 갈릴리의 대중 사역만이 아니라 유대와 예루살렘의 긴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장은 이혼 논쟁, 어린아이를 향한 축복, 부자 청년과의 대화, 제자들이 받을 보상과 하나님 나라의 역전을 한 흐름으로 묶어 예수의 제자도가 가정, 재산, 지위, 미래 소망 전체를 다시 해석하게 함을 보여 준다.

바리새인들이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묻는 장면은 단순한 가정 상담이 아니라 당시 유대 율법 논쟁과 연결되어 있다. 신명기 24장의 이혼 증서 규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견해가 있었고, 특히 “수치 되는 일”의 범위를 좁게 볼지 넓게 볼지가 논쟁거리였다. 예수를 시험했다는 표현은 이 질문이 목회적 질문만이 아니라 예수의 율법 해석과 권위를 걸고 넘어지려는 의도를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는 이혼 규정의 세부 해석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창세기 창조 질서로 돌아가신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라는 말씀은 결혼을 인간이 편의에 따라 만든 계약만이 아니라 창조주가 세우신 언약적 결합으로 보게 한다. “둘이 한 몸”이라는 창세기 2장의 언어는 결혼이 단순한 동거, 경제 협력, 가문 연결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어진 깊은 연합임을 뜻한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임의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허락했다는 반론에 대해 예수는 그것이 사람들의 완악함 때문에 주어진 양보였다고 설명하신다. 고대 사회에서 이혼 증서는 버림받은 여인의 법적 상태를 분명히 하여 최소한의 보호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예수는 보호 규정이 창조 질서를 뒤집는 면허가 될 수 없다고 보신다. 율법의 허용 조항을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는 하나님 나라의 의와 맞지 않는다.

음행의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것은 간음이라는 말씀은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매우 날카로운 선언이었다. 많은 고대 법문화에서 남편의 권리가 더 크게 인정되었지만, 예수는 남편의 결정도 하나님의 결혼 질서 앞에서 심판받는다고 하신다. 이것은 상처 입은 배우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려는 말이 아니라,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쉽게 버리는 관행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는 말씀이다.

제자들이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반응한 것은 예수의 결혼 이해가 그들에게도 부담스럽게 들렸음을 보여 준다. 예수는 모든 사람이 독신의 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핵심은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 아래 놓인다는 점이다. 결혼은 자기중심적 권리 행사가 아니라 신실한 언약 책임이며, 독신도 열등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은사와 소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어서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오자 제자들이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사랑받는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공적 지위와 사회적 영향력은 낮았다. 제자들은 중요한 선생의 시간을 보호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신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는 말씀은 어린아이의 공로가 아니라 낮고 의존적인 자를 받아들이시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드러낸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신 것은 축복과 환대의 몸짓이다. 구약과 유대 전통에서 손을 얹는 행위는 축복, 위임, 동일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제자들이 주변부로 밀어내려 한 아이들을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로 세우신다. 마태복음 18장의 작은 자 주제와 이어 보면, 예수의 공동체는 힘 있는 사람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모임이 아니라 약하고 낮은 자를 주님 앞에 데려오는 공동체여야 한다.

부자 청년의 질문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그는 단순히 돈 많은 악인이 아니라 계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보인다. 제2성전기 유대교 안에서 영생은 장차 올 세상, 의인의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소망과 연결되었다. 예수는 그에게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 공경, 이웃 사랑을 언급하신다.

청년이 이 모든 것을 지켰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냐고 묻는 대목은 표면적 순종과 마음의 중심 사이의 차이를 드러낸다. 예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은 모든 제자에게 동일한 소유 처분 방식을 기계적으로 요구하는 규칙이라기보다, 이 청년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우상을 드러내는 명령이다. 그의 재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게 붙든 정체성과 의지처였다.

고대 사회에서 부는 하나님의 복이나 명예의 표시로 이해되기 쉬웠다. 물론 지혜 전통은 의와 부의 관계를 단순화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에게 부자는 존경받고 안정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예수의 말씀은 청중에게 충격적이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과장된 이미지는 부의 힘이 얼마나 깊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를 보여 준다.

제자들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놀란 것은 부자가 어렵다면 평범한 사람은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충격을 반영한다. 예수의 답은 복음의 핵심을 밝힌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구원은 인간의 도덕 성취나 사회적 유리함, 종교적 이력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인간의 가능성이 막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여는 길이다.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다. 갈릴리 어부와 세리였던 제자들은 실제로 가족과 생업, 익숙한 삶의 안정성을 뒤로하고 예수를 따랐다. 예수는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롭게 되는 때에 제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약속은 제자도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며, 예수의 왕권과 함께 종말론적 회복에 참여하게 됨을 뜻한다.

“새롭게 되는 때”라는 표현은 창조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게 한다. 신약 전체의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자리 분배가 아니라, 메시아 안에서 만물이 새로워지는 종말론적 회복과 연결된다. 제자들은 지금은 낮아지고 버리는 길을 걷지만, 그 길은 패배가 아니라 왕이신 예수의 미래에 참여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권력욕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위로다.

예수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버린 사람은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신다. 이것은 가족을 함부로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이 가장 강한 사회적 결속과 경제적 안전보다 우선한다는 뜻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가족 갈등, 사회적 배제, 재산 손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수는 그런 손실이 하나님 앞에서 잊히지 않으며, 새로운 하나님 가족과 장차 올 생명의 소망 안에서 보상된다고 약속하신다.

마지막으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말씀은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로 이어지는 문이다. 이 말은 인간이 계산하는 순서, 지위, 공로, 보상의 논리를 하나님 나라가 뒤집는다는 뜻이다. 이혼 논쟁에서는 남성의 편의가 창조 질서 앞에서 제한되고, 어린아이 장면에서는 낮은 자가 천국의 표지가 되며, 부자 청년 장면에서는 존경받는 부가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마태복음 19장은 하나님 나라의 역전이 가정과 공동체와 재산과 미래 보상 전체를 새롭게 정렬한다.

오늘 이 장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예수의 말씀을 단순한 윤리 조항 몇 개로 축소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말씀은 약한 배우자를 버리는 완악함을 폭로하고 창조주의 신실함으로 돌아가게 한다. 어린아이 축복은 공동체의 중심이 힘 있는 사람만이 아님을 알려 준다. 부자 청년 이야기는 종교적 성실함 속에도 재물을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숨을 수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은 버림과 낮아짐의 길이 하나님의 새 창조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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