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배경지식: 이혼 논쟁과 어린아이, 부자 청년, 섬김의 대속물과 바디매오
마가복음 10장은 예수께서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는 길에서 제자도를 다시 정리하는 장이다. 바리새인들은 이혼 문제로 예수를 시험하고,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며, 한 부자는 영생을 묻고도 재물 때문에 근심하며 떠난다. 이어 예수는 세 번째로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시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영광의 자리를 요구한다. 마지막에는 여리고 길가의 맹인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치며 길에서 예수를 따른다. 이 장은 가정, 재물, 권력, 치유라는 삶의 구체적 영역을 십자가로 향하는 예수의 길 안에 놓는다.
이혼 논쟁의 배경에는 신명기 24장 1절 해석을 둘러싼 유대교 내부 논쟁이 있다. 제2성전기와 랍비 전승에서 모세가 이혼 증서를 허락한 이유와 범위가 논의되었고, 어떤 해석은 엄격한 성적 부정에 초점을 두었으며 다른 해석은 더 넓은 사유를 허용했다. 바리새인들이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묻는 것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예수를 율법 논쟁과 사회적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시험이었다. 헤롯 안티파스의 결혼 문제를 비판하다 죽은 세례 요한의 기억도 이런 질문을 더욱 민감하게 만들었다.
예수는 먼저 모세가 무엇을 명했는지 되물으신다. 바리새인들은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버리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답한다. 예수는 그 허락을 하나님의 창조 의도 자체로 보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주어진 제한적 규정으로 해석하신다. 이 점이 중요하다. 율법의 한 조항이 죄로 손상된 현실 속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이 결혼을 세우신 본래 목적을 취소하지는 않는다. 예수의 답변은 허용 가능한 최소선보다 창조의 선한 질서를 바라보게 한다.
예수께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함께 인용하신 것은 결혼을 단순한 계약이나 남성의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으신 한 몸의 언약적 결합으로 보게 한다.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말은 창조의 질서를,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는 말은 결혼의 결합성을 강조한다. 고대 사회에서 남편이 이혼권을 더 강하게 행사하던 현실을 생각하면, 예수의 말씀은 약자인 아내의 안전과 결혼의 거룩함을 함께 지키는 방향으로 들린다. 집 안에서 제자들에게 더 설명하신 내용도 결혼을 가볍게 해체할 수 없는 관계로 제시한다.
이혼 주제 뒤에 어린아이 장면이 이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자 제자들은 꾸짖지만, 예수는 분히 여기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신다.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아이는 가족 안에서 소중했지만, 공적 명예와 권력의 주체라기보다 의존적이고 낮은 지위의 존재였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하신다. 이는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낭만화하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받는 방식이 자기 공로와 지위가 아니라 의존과 수납임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마가복음의 제자도 논리와 잘 맞물린다. 제자들은 앞 장에서 누가 큰지 다투었고, 뒤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높은 자리를 요구한다. 그 사이에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받는 사람의 자세를 낮은 아이의 모습으로 설명하신다. 개혁파와 복음주의 전통은 이 본문을 은혜의 수납성과 연결해 읽어 왔다. 하나님 나라는 힘으로 획득하는 상이 아니라, 예수께 나아와 축복을 받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부자 청년 또는 부자 관원의 질문은 경건하고 진지해 보인다. 그는 달려와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시며, 계명들을 언급하신다. 여기서 계명 목록은 주로 이웃 관계와 관련된 명령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것들을 지켰다고 답한다. 마가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고 기록한다. 예수의 도전은 그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실제로 붙들고 있는 우상을 드러내는 사랑의 진단이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모든 제자에게 동일한 소유 정리 방식만을 법처럼 강제하는 말로 축소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재물은 하나님 나라를 받는 데 가장 깊은 장애물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부는 하나님의 복, 사회적 명예, 안전, 후원자의 힘과 연결되어 이해되기 쉬웠다. 예수는 그 모든 안정 장치를 내려놓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난다.
예수께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놀란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과장법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를 표현한다. 당시 부유함이 복의 표시로 읽힐 수 있었다면, 제자들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반응은 자연스럽다. 예수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구원은 인간의 도덕적 성취나 재산 관리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가능성이다.
베드로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한다. 예수는 복음과 자신을 위해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 전토를 버린 자가 현세에도 공동체적 가족과 공급을 받고, 박해도 함께 받으며, 내세에 영생을 받는다고 하신다. 여기서 새 가족은 마가복음 3장의 예수 가족 재정의와 연결된다. 그러나 보상 약속은 번영 신학처럼 단순한 물질 보상 공식이 아니다. “박해를 겸하여”라는 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새 공동체의 은혜와 고난을 동시에 포함한다.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다는 말은 장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예루살렘은 성전, 제사, 왕권 기대의 중심이지만 동시에 예수를 죽음으로 넘겨줄 장소다. 예수는 앞서 가시고, 제자들은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한다. 세 번째 수난 예고는 가장 구체적이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고,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해 이방인들에게 넘기며, 조롱과 침 뱉음과 채찍질과 죽음 후에 사흘 만에 살아난다고 말씀하신다. 유대 지도자와 이방 권력의 결합 속에서 십자가 길이 드러난다.
그러나 바로 뒤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한다. 이 요청은 메시아 왕국을 명예와 지위의 구조로 이해한 제자들의 기대를 보여 준다. 고대 궁정 세계에서 왕의 좌우편은 권력과 명예의 자리였다. 예수는 그들이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자신이 마시는 잔과 받는 세례를 언급하신다. 구약과 유대 전승에서 잔은 때로 하나님의 심판과 고난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는 제자도의 운명을 암시한다.
다른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낸 것도 그들이 더 겸손해서만은 아닐 수 있다. 같은 명예 경쟁 속에서 자신들이 밀렸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예수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권세를 부리고 고관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언급하신 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리더십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고,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당시 명예 질서를 정면으로 뒤집는 가르침이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이 장의 중심축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이라는 말은 포로 석방, 노예 해방, 생명을 대신하는 값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 전승과 다니엘 7장의 인자 이미지가 함께 울린다고 보는 해석도 많다. 예수의 왕권은 군림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내어 주는 대속적 섬김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제자의 리더십도 십자가의 모양을 따라야 한다.
여리고에서 바디매오가 등장하는 장면은 예루살렘 입성 직전의 마지막 치유 이야기다. 여리고는 요단 계곡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중요한 도시였고, 많은 순례자가 유월절을 향해 이동하던 길과도 관련된다.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했다는 말은 그의 경제적·사회적 취약성을 보여 준다. 그는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메시아 왕권 기대와 연결된다.
무리는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지만, 그는 더욱 크게 부르짖는다. 앞에서 제자들이 아이들을 막았던 것처럼, 여기서 무리는 길가의 약한 자가 예수께 나아오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예수는 멈추어 그를 부르신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간다. 겉옷은 가난한 이에게 중요한 소유물이자 보호물이었을 수 있는데, 그는 예수의 부름 앞에서 그것을 놓고 나아간다. 이는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떠난 사람과 강하게 대비된다.
예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신 질문과 같은 형식으로 들린다. 두 제자는 영광의 자리를 원했지만, 바디매오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구한다. 마가복음에서 봄과 깨달음은 깊은 상징성을 가진다.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 예고를 들으면서도 보지 못했지만, 맹인 바디매오는 예수의 정체를 부르짖고 치유받은 뒤 길에서 예수를 따른다. 그는 단지 시력을 회복한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 길을 따르는 제자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씀은 치유와 구원의 언어가 겹쳐 있음을 보여 준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께 대한 정확한 체계적 지식만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의 긍휼을 붙들고 끝까지 부르짖는 신뢰로 나타난다. 그는 즉시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른다. 마가복음의 “길”은 예루살렘과 십자가로 향하는 길이다. 따라서 바디매오 이야기는 단순한 기적담이 아니라, 참으로 보는 자가 누구이며 참으로 따르는 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제자도 본문이다.
마가복음 10장을 배경 속에서 읽으면 예수의 제자도가 삶의 주변부가 아니라 가장 실제적인 관계와 욕망을 재정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혼과 이혼 논쟁에서는 창조 질서와 약자 보호를 보게 하고, 어린아이 장면에서는 은혜를 받는 낮은 자세를 보게 하며, 부자 이야기에서는 재물의 안정성이 구원의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은 권력 욕망을 폭로하고, 바디매오의 외침은 낮은 자의 믿음이 어떻게 예수의 길을 따르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결국 이 장의 핵심은 인자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는 선언에 모인다. 예수는 결혼을 세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시고, 어린아이를 품으시며, 부자의 우상을 사랑으로 드러내시고, 권력의 질서를 섬김으로 뒤집으신다. 그리고 여리고 길에서 보지 못하던 사람을 보게 하셔서 예루살렘 길로 이끄신다. 마가복음 10장의 배경지식은 독자가 고대의 논쟁과 관습을 이해하도록 돕지만, 더 깊게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묻는다.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으며, 어떤 영광을 구하고 있으며, 예수를 보는 눈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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