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장 배경지식: 선한 일을 힘쓰는 시민적 삶과 은혜로 씻겨 난 새 백성
디도서 3장은 그레데 교회가 복음의 은혜를 개인적 경건에만 가두지 않고 공적 삶과 공동체 질서 속에서 드러내야 함을 보여 준다. 1장에서는 장로 임명과 거짓 교훈의 문제, 2장에서는 세대와 가정과 사회적 위치에 따른 바른 교훈의 삶이 다루어졌다. 3장에 이르면 바울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복종하고, 선한 일을 준비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온유함을 나타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권면은 로마 제국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신성화하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곧바로 성도들도 전에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여러 정욕의 종이었다고 고백하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디도서 3장은 시민적 책임, 공동체 언어,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선한 일의 열매를 한 장 안에 묶어 보여 주는 목회적 결론이다.
1절의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라”는 말은 그레데라는 로마 제국 속 섬 지역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그레데는 로마 행정과 도시 엘리트, 후원 관계, 지역 평판이 얽힌 사회였다. 작은 기독교 공동체가 불필요하게 반사회적 집단으로 오해받으면 복음의 증언은 쉽게 훼손될 수 있었다. 바울은 교회가 폭력적 반란이나 무질서의 이름으로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도록, 공적 질서 안에서 선한 일을 준비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동시에 신약 전체의 증언을 보면 국가 권위는 하나님 아래 있는 제한된 질서이지 궁극적 주가 아니다. 성도는 선한 양심으로 질서에 참여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버리면서까지 권세에 순응하지 않는다.
2절은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말한다. 고대 지중해 사회는 명예와 수치의 언어가 강했고, 공개적 모욕과 논쟁은 사회적 지위를 지키는 수단이 되기 쉬웠다. 그레데 교회의 거짓 교사들도 말과 논쟁으로 가정들을 무너뜨렸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말라고 한다. 온유함은 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보이는 절제된 힘이다. 교회는 진리를 지키되 비방과 싸움의 습관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
3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과거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였다고 말한다. 이 고백은 교회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우월감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다. 그레데인의 나쁜 평판을 지적한 바울은 동시에 교회 밖 사람들과 교회 안 사람들의 본질적 차이가 인간적 우월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임을 분명히 한다. 시기와 악독과 미움의 관계는 죄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공동체 관계를 망가뜨리는 힘임을 보여 준다.
4절과 5절은 디도서 3장의 복음 중심이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라는 표현은 2장의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와 호응한다. 구원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목회서신이 선한 일을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그 선한 일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다.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하여 도덕주의를 차단한다. 성도는 선한 일을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 씻겨 새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선한 일을 힘쓴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초대 교회의 세례 언어와 새 창조 신학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씻음은 더러움의 제거와 새 출발을, 중생은 생명의 근본적 전환을,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이루시는 지속적 갱신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물 의식 자체가 자동으로 구원을 만든다는 뜻으로 축소될 수 없다. 바울의 강조점은 구원이 인간 행위의 성취가 아니라 성령으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자비라는 데 있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은 추상적 사면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사람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생활을 낳는다.
6절과 7절은 성령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히 부어졌고, 우리가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압축되어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성령의 풍성한 부어 주심이 함께 나타난다. “의롭다 하심”은 바울 신학의 핵심 언어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은혜로 받아들여지는 법정적 선언을 포함한다. “상속자”라는 말은 종이나 외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온 자녀의 지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레데의 작은 교회는 사회적 주변부에 있더라도 영생의 소망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8절은 “이 말이 미쁘다”고 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라고 한다. 여기서 선한 일은 단순한 착한 행동의 목록이 아니라 복음의 신뢰성을 드러내는 공동체적 삶이다. 통치자에게 무질서한 반란자로 보이지 않고, 이웃을 비방하지 않으며, 궁핍한 필요를 돌보고, 교회 안팎에서 유익한 일을 힘쓰는 삶이다. 바울은 이런 일이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유익하다고 말한다. 복음은 세상과 구별되지만 세상에 무익한 폐쇄성이 아니다. 은혜로 새롭게 된 교회는 도시와 이웃에게 선한 열매를 보인다.
9절은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한다. 목회서신의 거짓 교훈은 단지 지적 오류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논쟁 습관이었다. 족보와 신화, 율법 논쟁은 경건해 보일 수 있지만 복음의 중심에서 벗어나면 무익하고 헛된 것이 된다. 오늘 독자도 이 경고를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성경적 진리를 분별하는 일과 끝없는 추측과 자기 과시적 논쟁에 빠지는 일은 다르다. 바울은 디도에게 교회를 살리는 바른 교훈과 교회를 소모시키는 논쟁을 구별하라고 한다.
10절과 11절의 “이단에 속한 사람”은 오늘의 교리사적 용어만을 그대로 떠올리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분파를 만들고 경고를 거부하며 스스로 정죄를 드러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울은 한두 번 훈계한 뒤 멀리하라고 한다. 이것은 성급한 배척이 아니라 목회적 경고와 인내 후에도 공동체를 계속 찢는 사람에게 필요한 경계다. 은혜의 복음은 무제한의 혼란을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의 평화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12절부터 15절의 개인적 지시는 디도서가 실제 선교 현장에서 나온 편지임을 보여 준다. 바울은 아데마나 두기고를 보내면 디도가 니고볼리로 오라고 말한다. 니고볼리는 “승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여러 도시 이름이지만, 서부 그리스의 니고볼리가 자주 논의된다. 바울은 겨울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작정했다. 세나와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 부족함이 없게 하라는 말은 초대 교회 선교가 여행, 숙박, 법률가나 학식 있는 동역자, 재정 지원과 실제 돌봄에 의존했음을 보여 준다. 신학과 선교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이동과 지원, 환대 속에서 이루어졌다.
14절은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장 전체의 결론처럼 들린다. 성도는 선한 일을 즉흥적 감정으로만 하지 않고 배워야 한다. 필요를 분별하고, 실제 도움을 준비하며, 공동체가 열매 없는 종교 언어에 머물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디도서 3장의 선한 일은 은혜와 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은혜가 사람을 씻고 새롭게 하며, 새롭게 된 사람이 필요한 일에 준비된 삶을 살게 한다.
결국 디도서 3장의 배경지식은 바울의 윤리가 얼마나 복음 중심적인지를 보여 준다. 그는 그레데 교회가 로마 세계 안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고, 비방과 다툼을 버리며, 선한 일에 힘쓰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모든 권면의 뿌리는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롭다 하심,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교회는 과거의 어리석음과 정욕의 종살이를 기억하기 때문에 겸손하고, 은혜로 씻겨 났기 때문에 소망이 있으며, 영생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현재의 도시와 이웃 안에서 선한 일을 준비한다. 그래서 디도서 3장은 바른 교훈이 공적 삶과 은혜의 신학과 실제 섬김으로 완성되는 장이다.
참고자료
- Philip H. Towner, The Letters to Timothy and Titu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Eerdmans, 2006.
- George W.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Eerdmans, 1992.
- William D. Mounce, Pastoral Epistles, Word Biblical Commentary 46, Thomas Nelson, 2000.
- Andreas J. Köstenberger, 1–2 Timothy and Titus, Evangelical Biblical Theology Commentary, Lexham, 2020.
-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Jr., 1, 2 Timothy, Titus, New American Commentary 34, B&H, 1992.
- I. Howard Marshall, The Pastoral Epistles,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T Clark, 1999.
-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Epistles to Timothy, Titus, and Philemon, Calvin Translation Society.
- Gordon D. Fee, 1 and 2 Timothy, Titus, 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Hendrickson, 1988.
- Luke Timothy Johnson, The First and Second Letters to Timothy, Anchor Yale Bible 35A, Yale University Press, 2001.
- Ben Witherington III, Letters and Homilies for Hellenized Christians, Vol. 1, IVP Academic, 2006.
- Craig S. Keener,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New Testament, 2nd ed., IVP Academic, 2014.
- Clinton E. Arnold, ed., Zondervan Illustrated Bible Backgrounds Commentary: Romans to Philemon, Zondervan, 2002.
- N. T. Wright and Michael F. Bird, The New Testament in Its World, Zondervan Academic, 2019.
- David A. deSilva, Honor, Patronage, Kinship & Purity: Unlocking New Testament Culture, IVP Academic, 2000.
- Everett Ferguson, Backgrounds of Early Christianity, 3rd ed., Eerdmans, 2003.
- Wayne A. Meeks, The First Urban Christians: The Social World of the Apostle Paul, Yale University Press, 1983.
- Gerald F. Hawthorne, Ralph P. Martin, and Daniel G. Reid, eds.,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IVP, 1993, entries on Pastoral Epistles, good works, justification, and household.
- Howard I. Marshall, A. R. Millard, J. I. Packer, and J. D. Douglas, eds., New Bible Dictionary, 3rd ed., IVP, 1996, entries on Titus, Crete, regeneration, and citizenship.
- G. K. Beale and D. A. Carson, eds.,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Baker Academic, 2007.
- Herman Ridderbos, 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Eerdmans,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