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장 배경지식: 첫 장막과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9장은 앞 장의 새 언약 논증을 성막과 피와 대속죄일의 배경 속에서 더 깊이 풀어낸다. 저자는 옛 언약의 예배가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첫 장막과 그 안의 기물, 제사장의 섬김, 지성소 출입 제한, 피 뿌림의 의식이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거룩함과 죄의 심각성을 가르쳤다고 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완성 자체가 아니라 “현 시대까지의 비유”였고, 그리스도께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들어가심으로 참된 실체가 드러났다고 설명한다.
1절은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고 말한다. “세상에 속한”이라는 표현은 성막이 속되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피조 세계 안에 세워진 눈에 보이는 예배 공간이라는 뜻이다. 광야 성막과 뒤이은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은혜의 표지였다. 동시에 그것은 천으로 만든 휘장, 금으로 입힌 기물, 정해진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구조였기 때문에 임시성과 제한성을 지니고 있었다.
2절부터 5절은 성막의 배치를 요약한다. 첫째 장막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었고,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가 있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성막 묘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질서가 인간의 자의적 접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정해졌음을 보여 준다. 등잔대의 빛, 진설병의 상, 분향의 향기, 언약궤와 속죄소는 모두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가르쳤다.
히브리서가 “금 향로”를 지성소와 연결해 언급하는 점은 오래 논의되어 왔다. 구약의 분향단은 보통 성소 안, 휘장 앞에 놓였지만, 대속죄일에는 향연이 속죄소를 덮어 대제사장이 죽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공간 배치의 세부 도면을 반복하기보다, 지성소 접근과 관련된 예배 기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성막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임재 앞에 나아갈 때 피와 향, 중보와 정결의 질서가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언약궤 안에 있던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언약의 돌판은 이스라엘 역사의 핵심 기억을 담고 있다. 만나는 광야에서 먹이신 하나님의 공급을,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장직의 권위를, 돌판은 언약 말씀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동시에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떠올리게 한다. 광야의 원망, 제사장 권위에 대한 반역, 율법 파기는 모두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거룩한 임재 앞에 설 수 없음을 드러냈다.
6절과 7절은 제사장의 반복적 섬김과 대제사장의 연례적 지성소 출입을 대조한다. 일반 제사장들은 첫 장막에 항상 들어가 섬겼지만, 둘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 해마다 한 번 들어갔다. 그때도 피 없이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은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배경을 떠올리게 한다. 대제사장은 자기와 백성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고,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렸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있는 백성 사이의 간격은 가볍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달력에서 매우 무거운 날이었다. 백성은 스스로를 낮추고, 성소와 제단과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정결 의식이 이루어졌다. 두 염소의 의식도 중요했다. 한 염소는 속죄 제물로 드려졌고, 다른 염소는 백성의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졌다. 이 제도는 죄가 단순한 실수나 심리적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처리되어야 할 실제 오염과 죄책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의식은 해마다 반복되어야 했다.
8절은 성령께서 이 제도를 통해 첫 장막이 서 있는 동안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이셨다고 해석한다. 히브리서의 구약 읽기는 단순한 역사 회상이 아니라 성령의 의도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다. 휘장과 제한된 출입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죄 문제의 최종 해결 전에는 자유롭고 담대한 접근이 아직 열리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표지였다.
9절과 10절은 옛 제사의 한계를 설명한다. 예물과 제사는 양심을 온전하게 할 수 없었고,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정결 규례는 개혁할 때까지 맡겨진 육체의 예법이었다. 여기서 “양심”은 현대적 자기감정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책과 정결을 의식하는 내면의 자리다. 제사는 백성에게 죄 사함과 정결의 언어를 가르쳤지만, 죄인의 내면을 최종적으로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하는 완성의 능력은 장차 올 그리스도에게 있었다.
11절부터 장의 중심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손으로 짓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들어가셨다. 이 표현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한 구역에 들어가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늘 성소 곧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들어가셨다는 뜻이다. 지상 성막은 하나님이 주신 모형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모형이 가리키던 실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12절은 예수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단번에”라는 표현은 히브리서 9–10장의 핵심이다. 구약 제사는 반복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은 반복되지 않는다. 반복되지 않는 이유는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니라 완전해서 다시 필요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는 동물 피가 상징하고 예표하던 속죄의 실체다.
13절과 14절은 정결 의식의 효력과 그리스도의 피의 더 큰 효력을 비교한다. 염소와 황소의 피, 암송아지의 재가 육체의 정결을 위해 사용되었다면,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여기서 구원은 단순히 죄책감이 줄어드는 심리 변화가 아니다. 깨끗하게 된 양심은 우상과 자기 의와 죽은 행실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는 새 언약의 삶으로 연결된다.
15절은 그리스도를 새 언약의 중보자로 부른다. 첫 언약 때 범한 죄에서 사람들을 속량하려고 죽으셨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된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죽음을 시간적으로 신약 시대 사람에게만 유효한 사건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단번의 속죄는 하나님 약속을 믿었던 옛 언약 백성의 죄 문제까지 포괄하는 구속의 근거다. 그래서 그는 모든 언약 약속의 중심 중보자다.
16절과 17절의 “유언” 논의는 헬라어 단어가 언약과 유언의 의미를 함께 가질 수 있다는 배경을 활용한다. 고대 세계에서 유언은 죽음이 확인된 뒤 효력을 가졌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언어유희를 통해 새 언약의 효력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분리될 수 없음을 설명한다. 예수는 언약을 선포하는 중보자일 뿐 아니라, 자기 죽음으로 그 언약의 약속을 확증하신 분이다.
18절부터 22절은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워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모세는 율법책과 백성에게 피를 뿌리며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고 선언했다. 출애굽기 24장의 시내산 언약 체결 장면이 배경이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며, 언약 관계가 생명과 죽음의 엄중함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 준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피 자체를 기계적으로 요구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죄 사함이 생명의 대가와 대속의 질서 없이는 가볍게 처리되지 않음을 뜻한다.
23절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으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좋은 제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하늘 자체가 도덕적으로 더럽다는 뜻으로 읽기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의 대표적 접근과 예배 질서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으로 열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상 성막의 정결 의식은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키는 예표였다.
24절은 그리스도께서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고 말한다. “우리를 위하여”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예수의 승천은 단순한 영광의 귀환이 아니라 대표적 중보 사역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시며, 그의 상처 입은 순종과 완성된 속죄가 성도의 담대함의 근거가 된다.
25절과 26절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반복되지 않는 이유를 다시 강조한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다른 피를 가지고 들어갔지만, 그리스도께서도 반복해서 자신을 드려야 했다면 창세 이후로 자주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 끝에 나타나 자기 희생으로 죄를 없이 하셨다. 히브리서에서 “세상 끝”은 단순한 연대기적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구속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왔음을 뜻한다.
27절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장례식 위로문으로 자주 인용되지만, 문맥에서는 그리스도의 단번의 희생과 연결된다. 인간에게 죽음과 심판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도 실제 인간 역사의 자리에서 한 번 이루어진 결정적 사건이다. 그는 죽음을 반복하지 않으시며, 죄를 담당하기 위해 한 번 드려지셨다.
28절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한다. 초림은 죄를 담당하는 희생의 사역과 연결되고, 재림은 이미 완성된 속죄의 열매를 최종 구원으로 드러내는 사건과 연결된다. 신자는 두려움 속에서 다시 제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니라, 단번의 속죄를 의지하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히브리서 9장의 배경지식은 성막 기물과 제사 규례를 낯선 고대 종교 풍습으로만 보지 않게 한다. 그것들은 죄 있는 백성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엄중한지, 동시에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롭게 그 길을 가르쳐 오셨는지를 보여 준다. 첫 장막은 제한과 반복의 질서였지만, 그 제한은 절망의 벽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열어 주실 길을 바라보게 하는 교육적 표지였다.
그러므로 이 장의 신학적 중심은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그리스도다. 그는 지상 제도의 한 제사장이 아니라 새 언약의 중보자이며, 다른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의 피는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이 배경을 붙들 때 히브리서 9장은 복잡한 성막 해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 어떻게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복음의 깊은 설명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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